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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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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연구소 유튜브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북극곰과 펭귄을 동경한다면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평생 그 근처에 갈 기회가 없다면 더 유익하고 재미있습니다. 지난여름에 소설가 김금희 작가가 남극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대 때부터 꿈꿨던 일이 현실이 된 겁니다. 약 한 달간 남극에서 지낸 일들을 엮어 책으로 냈습니다. 남극에는 지폐나 신용카드를 들고 가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월동 대원들에게 줄 초콜릿과 세종기지 도서관에 놓고 올 《경애의 마음》을 챙겨서 2024년 1월 27일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 파리와 칠레 산티아고를 거쳐 1월29일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했습니다. 인간과 그것이 만들어낸 문명이 없는 자연 속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었던 작가는 2월 1일 아침 10시 40분 드디어 남극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세 시간 뒤 킹조지섬 프레이 기지에 도착했습니다. 말뚝을 대신한 얼음에 보트를 고정해놓은 남극이었습니다. 조디악(Zodiac)을 타고 마침내 세종기지 선착장에 도착하니 대원들이 반겨줬습니다. 작가는 펭귄이 되어 세종기지 구석구석을 둘러봤습니다. "남극 자체가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 대륙이지만 그중에서도 환경적, 과학적, 역사적으로 존재 가치가 높아 조심히 접근해야 하는 공간을 남극특별보호구역(Antarctic Specially Protected Area), 줄여서 아스파(ASPA)"라고 부릅니다. 세종기지 근처에 있는 펭귄 마을인 나레브스키 포인트는 한국이 주도해서 제정한 최초의 아스파입니다. 김금희 작가는 펭귄 사진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제일 먼저 방문했습니다. 완력을 과시하는 용감한 펭귄이 아니라 느리고 작은 존재가 신비롭게 보여주는 태연함에서 감동과 경이를 느꼈습니다. 떠날 때쯤 다시 만난 아기 펭귄을 보며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인간처럼 펭귄도 개종 좀 늦게 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고마울까. 가장 강한 것만 존속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힘과 속도를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

경제의 특이점이 온다 - 제4차 산업혁명, 경제의 모든 것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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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여러 기술이 한꺼번에 발전하면 혁명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충분한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그런 변화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두 차례에 걸쳐서 진행되었으며, 지금은 세 번째 혁명인 정보혁명이 이행되는 과정에 있다. 물론 이런 혁명이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는 건 결단코 아니다. 실제로 산업혁명의 경우 30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정보혁명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50년이 지났을 뿐인데 여러모로 보아 아직 끝보다는 시작 단계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16) '특이점 singularity '이라는 용어는 본래 함숫값이 무한이 되는 변숫값을 의미하는 수학 및 물리학 용어였다. 대표적인 예로 물질의 밀도가 무한히 높아지는 블랙홀의 중심을 들 수 있는데, 특이점에 도달하면 기존의 규칙이 깨지기 때문에 다음을 예측하기가 평소보다 더 어려워진다. 최근에는 이 말이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기술의 특이점은 일반적으로 최초의 인공일반지능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 이 실현되어 성인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지적인 과업을 무엇이든 수행할 수 있는 기계가 등장했을 때 벌어질 상황으로 정의된다. 이 기계는 발전을 거듭해 인간보다 훨씬 똑똑한 초지능 Superintelligence 적 존재가 되고,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가늠하기 힘든 속도와 규모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17) 정보혁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정보와 지식이 생산, 자본, 노동, 원자재보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정보는 그 자체로 이미 경제적 가치를 획득했으며, 서비스가 경제 전반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제조업은 2위로, 농업은 3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29) 러다이트 운동가들이나 폭도들은 노동 절감형 기계를 도입하면 대규모 실업이나 빈곤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는 경제적, 정치적 의견을 표출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지독...

도둑의 도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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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의 정의에 따르면 '중범죄 혹은 절취 竊取 를 목적으로 건조물 建造物 에 불법적으로 진입하는 행위'를 침입절도라고 한다. '침입절도가 성립하려면 범인이 건축구조에 불법으로 진입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단순 절도, 소매치기, 강도(42)'와는 다른 공간 범죄이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 〈이탈리안 잡〉, 〈인셉션〉 등을 떠올리면 된다. '침입절도는 대도시의 원죄다. 그도 그럴 것이 무단으로 침입하려고 했던 자들의 이야기를 빼고 나면 한 건물에 대해 이야기할 게 많지 않을 테니까. 침입자들은 건축의 정사 正史 에 들어가지 못한 일탈적 존재면서도 건축물 자체만큼이나 오랫동안 건축이라는 이야기를 구성해온 필수 요소다(20)'. 사람들이 건축물을 처음 볼 때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정문이 아니라 다락 창문이나 지하 대피소, 허술한 방충망을 찾아낸다. 그렇다면 '도둑들의 방식으로 건물을 본 것이다(41)'. '어떻게 보면 도둑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건축을 잘 이해하는 자들이다. 건물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무단으로 들락거리고, 건물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한계를 무시한다. 일단 문이 필요 없다. 벽에 구멍을 뚫거나 천장을 잘라내면 되니까(22)'. 도둑은 '문도 벽도 지붕이나 천장도 없는 세계, 즉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 같다. 침입절도는 다른 세계로(최소한 다른 방이나 건물로) 이어진 흐물거리는 벽이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입구로 이루어진 매트릭스의 물리적 재현이다. 당장은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두 개의 방은 결국 머지않아 이어진다.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면, 도둑은 캘리포니아에서 헐값에 구한 고물 채굴 장비로 터널을 뚫어서라도 두 건물 사이의 이동 경로를 확보한다. 건축물을 오용하고, 남용하고, 건축 목적과는 정반대로 이용함으로써 이들은 건물들의 '진짜' 사용법을 밝혀낸다(22)'. '...

신극우주의의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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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집적 1 경향은, 자신이 전적으로 부르주아라는 계급적 자의식을 지니고 있고 또 자신의 계급적 특권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가급적 강화하려 하는 여러 계층들이 영구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이 계층 집단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혹은 자신들이 사회주의라 부르는 대상을 증오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늘 잠재해 있는 계급 하락의 책임을 그 원인이 되는 장치에 묻는 대신, 자신들이 한때 지위를 누렸던 체제를―전통적인 관념에 따르자면―비판적으로 적대해왔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은 자주 그렇듯이 객관적인 상황에 의해서 더 이상 그 실체를 유지하지 못할 때 비로소 자신의 악마적인 성격을, 자신의 진정으로 파괴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지요. 마녀재판이 실제로 벌어졌던 때는 토마스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가 아니라, 반종교 개혁의 시대에 와서였습니다. (13) [극우주의에] 가장 영향 받기 쉬운 집단이 특정한 소시민 계급 집단이기는 합니다. 무엇보다도 백화점 등 유사 상업시설이 소매업을 독점함에 따라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소상공인들이 특히 그렇지요. 하지만 소시민 외에도, 아시다시피 언제나 위기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농부들도 분명 두드러진 역할을 합니다. 제 생각에는 농업 문제를 근본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보조금 지급 등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인위적인 방식이 아닌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즉 이성적이고 합당하게 농업을 집산화하는 데 정말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 불길의 진원지는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입니다. (15) 파시즘 운동이 경제와 맺는 관계는 구조화되어 있으며, 이 관계는 바로 저 자본의 집적 경향 속에, 또 빈곤을 양산하는 경향 속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18) 저는 공포의 예견이란 말이 지금 극우주의에 관한 통상적인 견해에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대단히 핵심적인 무언가를 건드린...

성장 없는 번영 -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를 위한 생태거시경제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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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수십 년 안에 인구가 90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는 이 세계에서 번영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우리는 다가올 세계에 걸맞은 번영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는가? 생태계의 한계를 더는 부정할 수 없는 뚜렷한 징후들이 나타나는 상황에서도 지금의 전망이 믿을 만한 것인가? 우리의 전망을 현실의 변화에 맞추어 어떻게 변화시켜 나아갈 것인가? (16) 지금 세계는 가용 자원이 줄어들고 있고, 환경의 절대적인 한계와 마주하고 있으며, '빈곤의 바다' 위에 '번영의 섬들'이 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이미 부유할 대로 부유한 이들의 끝없는 소득증대가 진정 우리가 바라고 기대할 만한 관심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아닌, 더욱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형태의 번영을 이룰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17)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안정성을 유지한다. 경제가 비틀거리자(2008년 후반에 그 모습이 극적으로 나타났다) 정치인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기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직장은 물론 집을 잃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침체의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그럼에도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라도 하면 정신이상자나 몽상가, 혁명주의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에 의문을 던져야만 한다. 경제학자에게 성장 없는 경제라는 개념은 저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생태주의자에게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저주이다.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하위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유한한 생태계 안에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 시스템이 놓일 수 있는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답해야 한다. (30) 세계를 재앙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성장지상주의는 경제와 정치 시스템이 지닌 가장 주요한 특징이었다. 또한 성장이라는 지상과제가 현대 경제의 구조를 결정지었고 금융업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견인했다. 성장지상주의는 규...

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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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유일하게 완전경쟁 시장의 모델을 볼 수 있는 것은 '치킨시장'뿐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치킨시장에서도 강자와 약자가 나뉘고 프랜차이즈별로 양극화 현상도 뚜렷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자면 치킨시장 자체는 포화 상태에 가까운 완전경쟁 시장이다. 우리가 꿈꾸는 건전한 자본주의 시장의 증거가 겨우 치킨점이라니 적잖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완전경쟁 시장이라 부를 수 있어도 치킨업계 입장에서는 과잉 시장이고 피 터지는 '치킨게임'의 현장이다. (56) '대체 치킨은 무슨 맛으로 먹는가'였다. 그런데 오래도록 관찰한 결과, 사람들은 치킨을 닭과 연결짓지 않는다. 치킨 자체가 닭이긴 하지만 우리가 치킨이라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닭이 아니다. 각자 갖고 있는 치킨의 취향은 후라이드냐 양념이냐로 갈리지만 그건 튀김옷이나 소스에 대한 취향에 가깝다. (58) 라면과 믹스커피 그리고 치킨이야말로 한국의 지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음식일 것이다. 그 음식이 닿아 있는 사회의 접촉면이 워낙 다양하고 그 자체로 근대의 음식 형성과 미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74) 그동안 음식칼럼니스트들부터 맛집블로거들, 그리고 대중들까지 치킨에 대한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해놓았다. 당연한 일이다. 파는 사 람도 많고 먹는 사람도 많으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제적 음식'이기 때문이다. 또 각자의 후라이드가 있고 각자의 양념치킨을 가졌다는 점에서 '모든 이'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후라이드치킨의 역사야말로 각자의 경험 속에서 녹아나는 '생활'의 성격을 갖는다. 누구나 첫 치킨을 먹은 경험, 치킨과 얽힌 기억들을 갖고 있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떠들 수 있기 때문이다. (75) 만인이 각자의 치킨 역사를 갖고 있다. (75) 더보기... 프랜차이즈 치킨점의 성공 여부는 맛이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와 상점이 입점한 상권의 수준에 달렸다. '정할 것이 없으면 치킨집이나 ...

서울의 심연 - 어느 청년 연구자의 빈곤의 도시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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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나는 지난 2019년부터 5년 동안 쪽방촌, 쪽방 거주자, 일선 지원기관들을 참여관찰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속적으로 대화해 왔다. 그리고 2022~2023년의 1년간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가 여름부터 다음 해 여름까지 총 다섯 번의 계절 동안 거주하면서 거주자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9) 01 쪽방촌에 살다 내가 들어갔던 곳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동자동 쪽방촌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약 1,000여 명으로 쪽방촌들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 사회이며, 철도 교통의 중심지인 서울역과 인접해 있다. 2023년 기준, 동자동 쪽방촌은 도로명주소 기준으로 후암로49길, 후암로57길, 한강대로104마길 등지에 걸쳐 있다. 나는 후암로57길의 한구석에서 살았다. (13) 쪽방촌의 평당 월 30만 원을 상회하는 월세는 사실 심각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나 정작 거주자들에게 이곳은 '싼 맛'에 사는 동네다. 여기서 싸다는 것은 월세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나 보증금이 없다는 의미다. 월세가 점차 오름에도 불구하고 저렴하다는 착시는 여기서 생긴다. 쪽방촌은 (수)백만 원의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머무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38) 02 사회 복지 시설, 쪽방상담소 동자동 쪽방촌에서 거주자가 주로 만나게 되는 일선의 지원 기관은 서울역쪽방상담소(사회 복지 시설, 이하 쪽방상담소), 동자동사랑방(사회 운동 단체, 이하 사랑방), 교회(종교 기관)로 대분되며, 이 기관들은 쪽방촌 빈곤의 감소를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 (49) 쪽방상담소는 2008년 오세훈 시장 당시 서울시, 용산구청과 함께 쪽방 전수 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그때 사회복지사가 돌아다니며 발굴한 쪽방 건물은 60여 채였고, 이후 박원순 시장 때 몇 개 더 추가되어 2022년 말 기준 쪽방 건물 66채, 쪽방 1,287 개가 공식 쪽방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쪽방상담소가 정의하는 쪽방 거주자는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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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당히 오랜 기간 수많은 투쟁과 희생을 치러냈고, 실로 위대한 민주주의를 이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제나름의 진단을 말씀드리자면,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때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31) 한국인들은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정치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깁니다. 이제 광장 민주주의는 일상 민주주의로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거지요. (34) 어느 나라든 교육의 중점은 '적응'에 있는 법입니다. 기존의 질서와 규범을 익혀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것, 보통 '사회화'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교육의 목표이지요. 그러나 독일 교육에서는 '적응'보다 '비판'을 더 중시합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는 것,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이 독일의 비판 교육입니다. 정말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청소년들이 굉장히 비판 의식이 강합니다. 선생님은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마라.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배후를 의심해라.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성숙한 민주시민이 된다"라고 가르칩니다. (67) 저는 독일이 백만 난민의 기적을 이룬 바탕에는 인간 존엄을 지키는 것을 국가의 존재 이유로 삼은 국민적 합의, 시민적 의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높은 정치의식을 가진 시민을 길러낸 것이 독일의 비판 교육이라고 확신합니다. (71) 더보기... 일본은 많은 장점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묶여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시아에서 어느 나라도 일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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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완치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닌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까? 장애가 있는 아이가 '나아진다'는 말은, 종종 '비장애인과 비슷해진다'는 욕망을 함축할 때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에서 '나아짐'이라 함은 '걷게 됨'이었다. 내가 받은 여러 치료의 목적이 '조금 더 예쁘게 걷기, 오래 서 있기'에 맞춰져 있던 것처럼. 그때 현미와 나에겐 그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한 발자국 더 걸으면, 조금 더 예쁘게 서 있을 수 있게 되면 그것보다 기쁜 게 없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고, 내 몸을 좀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치료를 받는다. 걷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습한다. (18)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보다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 해낼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비장애인 되기'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며 운동하고 싶었다. (20) 병원이 내게 마음의 고향이라면 현미에게는 연대의 공간이었다. 절망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자, 가장 혼란스럽고 괴롭게 느껴질 시기에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눈 공간이었다. (32) 자신과 다른 몸을 가진 딸을 사랑하는 일, 그 아이를 돌보며 보낸 수많은 시간을 표현하기에 '모성'이라는 단어 하나는 부족하다. 모성애라는 단어만으로 현미를 설명하는 건 억압과 욕망을 함께 담고 살아가면서 닮아있는 여성들과 기댈 줄 알았던 현미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것만 같다. (37) 굳이 목적을 이야기하자면, 자신은 꽤나 비겁한 종교적 인간이라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만 종교의 힘을 믿었는데 그 순간이 그러했다고 한다. 태균은 나의 건강과 안위를 조금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바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적었다. (49) 내가 '만약'이라는 단어에 갇혀 원망할 대상을 찾아다녔던 순간을. 하지만 결국에는 그 단어를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평화를. ...

게으름에 대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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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공동체의 경우, 농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더라면 얼마 안 되는 잉여를 전사와 사제들에게 나눠 주기보단 차라리 잉여가 생기지 않도록 생산을 줄이거나 소비를 늘렸을 것이다. 처음에, 전사와 사제들은 힘으로 강제하여 농부들을 생산케 하고 잉여를 내놓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한 대가의 일부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부양하는 데로 빠져 나간다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 농부들의 본분이라는 윤리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방법을 쓰게 되자 강제력을 쓸 일이 적어지고 따라서 지배에 드는 비용도 줄어들었다. (20) 여가란 문명에 필수적인 것이다. 예전에는 다수의 노동이 있어야만 소수의 여가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노동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일이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여가가 좋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전으로 문명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정하게 여가를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기술은 만인을 위한 생활 필수품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을 엄청나게 줄였다. (20) 여가의 현명한 이용은 문명과 교육에 의해 가능하다. 평생 동안 장시간 일해 온 사람이 갑자기 일을 하지 않게 된다면 따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상당한 양의 여가 없이는 최상의 많은 것들로부터 차단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박탈을 겪어야 할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다만 우매한 금욕주의–그나마 자기는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나 강요하는–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과돤 노동을 주장케할 뿐이다. (24) 이익을 가져오는 것만이 바람직한 행위라는 관념이 모든 것을 뒤바꿔 버렸다. 당신에게 고기를 제공해 주는 정육점이나 빵을 제공하는 빵집 주인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공해 준 음식을 즐길 때의 당신은, 일하는 데 필요한 힘을 내기 위해 먹지 않는 한 불성실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돈을 버는 것은 선이고 돈을 쓰는 ...

혁명의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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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인류가 집단적으로 살면서 구현하는 지진이며, 개인의 성격이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지휘할 수 있지만 혁명을 창조하거나 방해하지는 못한다. (32) 모든 혁명은 나름의 원인을 초월하며, '자연스러운' 사물의 경로를 뒤바꾸는 고유한 동학을 따른다. 혁명은 인간의 발명품으로, 불가피한 발생을 드러낸다기보다는 유의미한 별자리의 랜드마크로서 집단적 기억을 건설한다. 혁명이 역사적 진행의 정기적이고 누적적인 시간에 속한다는 믿음은 20세기 좌파 문화의 가장 커다란 오해 중 하나였고, 너무도 자주 진화론의 유산과 진보 이념의 짐을 짊어졌다. (35) 혁명은 들숨과 날숨을 쉬는 역사다. 혁명을 근대의 랜드마크이자 역사적 변화의 전형적 순간으로 복원한다고 해서 혁명을 낭만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혁명을 서정적으로 회고하고 우상적으로 재현하기 쉽다고는 해도 비판적 시선으로 그 해방적 특징뿐만 아니라 주저와 모호함, 잘못된 길과 철수를 파악하는 것이 방해받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이 혁명의 여러 모순적 잠재력에 속하며, 혁명의 존재론적 강도에 들어 있다. 사회 세력과 정치적 목표—종교,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농민, 민주주의, 사회주의, 반식민, 반제국주의, 민족, 심지어 파시스트 혁명까지—에 따라 혁명을 나누는 고전적 분류는 흔히 연대기적·정치적 경계를 넘나드는 혁명의 정서적 차원을 파악하고자 하는 역사학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 연속체의 극적인—대부분 폭력적인— 단절로서 혁명은 강렬하게 체험된다. 인류는 혁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정신적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다량의 에너지와 정념, 정동情動과 감정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혁명에 미학적 전회 aesthetic turn 가 담겨 있거나 그런 전회가 발생한다. (36) 파시즘은 혁명의 수사를 구사하긴 했지만 분명 반혁명적 성격을 드러냈다. (38) 혁명은 의식적으로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반역이다 . (41)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좋든 나쁘든 간에 혁명이다. 여기서...

다시, 케인스 - 다음 세대가 누릴 경제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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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우리 안의 옛 아담 1 의 세속적 본능이 너무 강해져서, 이를 충분히 만족시키려면 다들 어느 정도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부유층과는 달리 우리 자신을 위해 더 일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소한 작업이나 임무, 일과도 신이 나서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버터 위에 빵을 얇게 펴 바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즉 이미 우리 사회가 가진 것들을 가능한 한 더 폭넓게 누릴 수 있도록 애쓸 것이다. 3교대로 일하거나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아주 오랫동안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3시간 정도의 일이면 우리 대부분이 내면의 세속적 본능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55) 문제의 본질은 케인스가 그 어디에서도 분배에 대해 충분히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들의 경제적 욕구를 충분히 만족할 정도의 소득을 얻지만, 아직도 세계 인구의 약 50%는 하루에 2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중 약 10억 명은 하루에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연명한다. 이런 사람들은 매일 먹고사는 경제 문제를 겪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들이 직면한 문제에 아직 답을 주지 못했다. (88) 케인스는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에서 "경제 문제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거나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그보다 더 위대하고 영구적 중요성이 있는 다른 문제들을 희생하면 안 된다..."라고 결론짓는다. 한편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케인스가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근본적으로 틀렸다. 적어도 일부 국가에서는, 그리고 보편적으로 가장 성공했다고 인식되는 국가들에서는 경제 체제가 만족을 모르는 욕구를 만들어냈다. 이런 욕구로 인해 우리가 인식하는 경제적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더 위대하고 영구적 중요성을 가진 다른 문제들'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 제단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124) 답은 꽤 명확해 보인다...

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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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날의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와 5·18 당시의 국가 폭력이 여타 폭력들과는 구별되는 다른 성격이었다면, 우리는 통상 학살로 칭하는 이 폭력의 독특한 성격에 주목해야만 한다. 즉 '반대파에 대한 산발적인 폭력이나 고문 등 여타의 억압 수단을 동반하는 국가 테러'와 '정책 결정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정책인 학살'을 구분해 분석할 때만이 오월광장의 의문에 답할 수 있는 학술적 통로를 열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5·18 연구의 무게중심을 피해자의 서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가해자에 대한 논의로 이동시키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7)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이승만의 언술은 이 같은 최고지도자의 행동양식과 동인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국민은 민권의 자유를 보호할 담보를 가졌으나 이 정부에 불복하거나 전복하려는 권리를 허락한 일이 없나니 어떤 불충분자가 있다면 공산분자 여부를 막론하고 혹은 개인으로나 도당으로나 정부를 전복하려는 사실이 증명되는 때에는 결코 용서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최초 정부의 출범 선언은 국민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시작된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반공이 하나이며, 자신에 대한 반대도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는 걸 공식화한 것이다. (20) 더불어 한국의 경우 정규군이 학살에 참여하는 주요 동인으로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요소(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동료집단의 압력과 집단의 순응성, 이데올로기 주입 효과)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근대 정규군의 일반적 특성으로 일컫는 '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문화다. '한국군은 그 모태가 된 일본군, 더 좁게는 일본 육사 출신'의 영향으로 미국이나 여타 서구에 비해 훨씬 강력한 "계급별, 학년별, 선후배별 지배와 복종 관계가 철저히 관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4) 한국군은 해방 정국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근대국가 건설기와 베트남전 당시 해외 파병에서 이미 두 차례...

차녀 힙합 - 집밖의 세계를 일구는 둘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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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녀가 이렇게 구구절절 서러운 줄 몰랐습니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잉여'이자 '덤'으로 여겨(12)'지고, '첫째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중압감을 느낀다면 차녀는 어둠 속에서 대사 한 줄이라도 더 얻어보려고 발버둥치는 무명배우 같(21)'거나, 차녀가 '소유하는 모든 것이 중고(133)'인 줄 몰랐습니다. 작가처럼 '아들을 낳기 위한 여정에 잘못 도착한 택배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낀 딸'일(12)' 때는 더욱 말이죠. 차녀는 세 갈래로 나뉩니다. '딸이 둘 있는 집의 차녀는 차녀이자 막내'이고, '밑에 여동생이 있는 차녀는 차녀 카테고리에서 다시 중녀로 분류'되고, '세 자매 중 둘째는 막내인 차녀보다 애매한 존재라 아래위로 치(254)'입니다. 차녀 앞에는 세 갈래의 미래가 나타납니다. '부모님이 세번째 출산을 감행하여 아들이 태어남으로써 중간에 낀 딸이 되거나, 세번째도 딸이어서 세 자매 중 중녀가 되거나, 이대로 차녀이자 핵가족 시대의 새로운 막내로 살아가거나. 어느 길로 가든 다른 갈래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88)'습니다. 중간 아이 콤플렉스 Middle child syndrome 라고 있습니다. '가운데 아이는 출생 순서상 집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되거나 방치될 가능성이 높기에, 사진도 가장 적고 양육자가 그들의 특성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19)'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짬 처리반으로 살며 몸에 익힌 생존 기술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주변을 두루 돌보고 항상 배려해야 한다는 한국 여성 훈육법과 만나 시너지(69)'를 냅니다. 식빵으로 비유하자면 차녀의 몫은 언제나 테두리입니다. '딸이 둘 이상인 집에서 스타일 차이가 생기는 데에는 출생 순서에 따른 양...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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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죄를 죄다 찰스 다윈 Charles Darwin 의 '적자생존 Survival of the fittest '에 뒤집어씌웠다. '적자생존'은 원래 다윈이 고안한 표현도 아니다. 다윈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 의 작품인데 앨프리드 월리스 Alfred Wallace 의 종용으로 다윈은 《종의 기원》 제5판을 출간하며 당신 이론의 토대인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 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다윈의 죄는 거기까지다. 《종의 기원》은 물론,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그는 생존투쟁(struggle for existence)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 the fittest 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를 들어 풍성하게 설명했다. 그의 후예들이 오히려 그를 좁고 단순한 틀 안에 가둔 것이다. 이 책은 그 틀을 속 시원히 걷어낸 반가운 책이다. (4) 협력은 우리 종의 생존에 핵심이다. 우리의 진화적 적응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적자'라는 개념이 '신체적 적자'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 논리를 야생에 대입하면, 덩치가 클수록 더 싸우려 들며 그럴수록 덤비려는 자가 적고 따라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므로 최상의 먹이를 독차지할 수 있고 가장 매력 있는 짝을 얻을 것이며 가장 많은 후손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150년 동안 이 잘못된 '적자'의 해석이 사회운동, 기업의 구조조정, 자유시장에 대한 맹신의 바탕이 되어왔으며, 정부 무용론의 근거로, 타 인구 집단을 열등하다고 평가하는 근거로, 또 그런 평가가 야기하는 결과의 참혹함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되어왔다. 하지만 다윈과...

시인의 말 - 이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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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량한 단어를 오래 모으면 울창해질 거란 믿음이 시작한 일 손끝에서 이파리가 쏟아지는 꿈을 꿉니다 빛 같은 잎들이 읽히고 빚 같은 과오들 떨어져 나가는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이훤/문학의전당 20160823 138쪽 9,000원 자물쇠 같던 낱말들 누가 부러뜨려 놓고 갔습니까 1 한 사람을 헤아리는 일만큼 치열한 일이 있을까 2 희망은 갑자기 온다 3 일 년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습니까 4 네가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문장이 되고 싶다 5 그대도 오늘 누군가에게 위로였다 6 너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어 화분을 들였다 아침마다 바람이 답장을 두고 갔다 7 분주하지 않은 채점표를 들고 신(神)은 아직 관조합니다 8 나는 오래 멈춰 있었다 한 시절의 미완성이 나를 완성시킨다 9 나는 그대가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답장이 되고 싶습니다. 알리바이 역자 온다 특별한 날이라며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욕심 그대도 오늘 편지 어느 계급주의 사회의 화창한 하루 철저히 계획된 내일이 되면 어제를 비로소 이해하고

진보와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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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상 진보란 본래 지금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이미 성취된 것은 진보라고 하지 않으며, 오로지 미래에(내일 아침이라면 제일 좋겠다) 성취되어야 할 어떤 것만이 진보가 된다. 앞의 세대가 이루어 놓은 일을 진보라고 인정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토록 힘들게 싸워 이루어 놓은 것들이라는 게 조금만 지나면 원래부터 당연히 그랬어야 할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수전 니먼(234) '좌파'란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안녕을 보장받고 스스로의 삶을 피워낼 수 있도록 다종다기한 활동을 벌이는 집단을 뜻한다. 그중에는 자본과 국가 권력에 맞서는 투쟁과 싸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피폐해진 사람들의 물질적·정신적 삶을 보호하고 복구하기 위한, 즉 삶을 다시 구축하기 위한 여러 활동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우리 모두 모래알같이 파편화된 개인을 넘어 함께 살아가며 사회를 이루는 이웃이요, 형제자매였음을 회복하면서 사회 전체를 재구성해나가는 활동까지도 포함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단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투쟁과 요구만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회가 건설되는 데에 필요한 여러 정치적·도덕적·미학적·문화적 요구로 전선을 계속적으로 확대해나가는 집단을 뜻한다. - 홍기빈(284)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Left Is Not Woke, 2023 /수전 니먼 Susan Neiman /홍기빈 역/생각의힘 20240425 296쪽 19,000원 워크 Woke 는 1938년 "깨어 있으라 stay woke "는 노래 구절에 등장한 것이 그 기원이다. 블루스 가수인 레드벨리 Leadbelly 가 1938년에 발표한 노래 〈스코츠보로 소년들 Scottsboro Boys 〉은 "억울하게 강간죄를 뒤집어쓰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오랜 국제적 항의로 누명을 벗게 된 아홉 명의 흑인 소년에게 헌정된 노래(15)"였다. 이후 "불의에 맞서 깨어 있고 차별의 여러 증후를 언제나 감시할 것을 뜻했다(6)...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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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목표는 권력을 남성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권력에서 폭력을 제거하고 권력의 의미를 바꾸는 데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 페미니스트는 답이 없는 두 선택지에서 억지로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지를 늘리거나 질문 자체를 바꾸는 사람이다. (5) 모든 운동과 이념이 특권을 성찰하지 않는 순간 억압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22) 수치심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게 해주고, 정의감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해준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내기 어렵다. (34) 왜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생기는 걸 두려워할까. 우리 사회에서 '피해의식'은 '남 탓을 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건 과대망상이나 남 탓하기라는 문제 행동을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이다. 이런 덧씌우기는 피해자가 '건강한' 피해의식을 가지는 걸 방해한다. 피해의식 victim mentality 의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첫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 원인이 아니다. 둘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을 막을 의무가 없다. 셋째, 피해자는 권리를 침해받은 자로서 공감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피해의식을 이해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없어져야 할 것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다. (61) 페미니즘보다 휴머니즘을 지향한다거나, 여성 인권이 아니라 보다 전체적인 인권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식의 말들이 휴머니즘과 인권을 가장 탈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과 휴머니즘이 다르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가령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을 재발명하고 있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꾸자는 급진적이고도 근본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운동이야말로 인간의 조건과 개념 자체를 질문하고 재구성하는 가장 혁명적인 휴머...

주소 이야기 - 거리 이름에 담긴 부와 권력, 정체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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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빈민가는 주소보다 시급한 것이 많아 보였다. 위생 설비, 깨끗한 물, 의료 서비스는커녕 장마철 호우를 피할 지붕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소가 없어 빈민가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주소가 없으면 보통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은행 계좌가 없으면 저축을 할 수 없고 대출도 받을 수 없으며 연금도 받을 수 없다. (...) 주소가 생긴 체틀라 사람들은 이제 수바시즈와 그의 팀의 도움을 받아 바로다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처음으로 개인 직불 카드를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주소가 신원을 증명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39) 주소의 이점은 현실에서 거의 즉각적으로 드러났다. 먼저 도로명 덕분에 유권자 등록과 선거구 책정이 쉬워지면서 민주주의가 증진되었다. 둘째, 주소 없는 지역이 범죄의 온상이 되곤 했던 터라 도로명은 치안 강화에도 도움을 주었다. (다소 부정적인 점이 있다면 주소가 반체제 인사들을 찾는 데도 유용하다는 사실이다.) 셋째, 그동안 수도와 전기회사들은 요금을 징수하고 설비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마다 나름의 시스템을 고안해 왔는데, 도로명 주소는 그런 업무를 훨씬 수월하게 해 주었다. 넷째, 각국 정부는 납세자들을 더 쉽게 찾고 세금을 더 쉽게 걷을 수 있게 되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도로명과 소득 사이에는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는데, 도로명 주소가 있는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소득 불평등 수준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51) 오늘날 지도가 완성되지 않은 지역은 전 세계 70퍼센트에 달한다. 그중에는 인구가 백만이 넘는 도시도 많다. 그런 지역이 우연찮게도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84) 더보기...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의 우체국 직원이었던 로버트 문이 우편번호(zip code)를 만들었다. (Zip은 zoning improvement plan(구획 정비 개선 계획)의 약자다.) 문이 상사에게 우편번호를 처음 제안한 때는 1944년이었는데,...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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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美 를 보는 눈'을 우리는 '안목 眼目 '이라고 한다. (12)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정치·경제·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 굴지의 안목들이 버티고 있어야 역사가 올바로 잡히고, 정치가 원만히 돌아가고, 경제가 잘 굴러가고, 문화와 예술이 꽃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당대에 안목 높은 이가 없다면 그것은 시대의 비극이다. 천하의 명작도 묻혀버린다. 많은 예술 작품이 작가의 사후에야 높이 평가받은 것은 당대에 이를 알아보는 대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19) 건축의 중요한 요소를 순서대로 꼽자면 첫째는 자리앉음새 location , 둘째는 능에 맞는 규모 scale , 셋째는 모양새 design 이다. 그런데 건축을 보면서 규모와 모양새만 생각하고 이보다 더 중요한 자리앉음새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건물 building 만 보고 건축 architecture 은 보지 않은 셈이다. (22) 건축에서 자연과의 어울림이란 말은 얼핏 들으면 겸손하라는 뜻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겸손하지만 비굴해서는 안 되고, 당당하지만 거만해서는 안 된다는 인생의 가르침은 건축에도 그대로 통한다. (23) 작신궁실 검이불루 화이불치 作新宮室 儉而不随 華而不傍 '새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상 이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백제의 미학이고 조선 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이다. 이 아름다운 미학은 궁궐 건축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상징하는 사랑방 가구를 설명하는 데 "검이불루"보다 더 적절한 말이 없으며, 규방문화를 상징하는 여인네의 장신구를 설명하는 데 "화이불치"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다. 모름지기 오늘날에도 계속 계승 발전시켜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간직해야 할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