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Who Cooked Adam Smith's Dinner?, 2012
  • 페미니즘은 늘 경제학의 문제였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싶어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러, 여성들은 상속받을 권리, 소유의 권리, 창업의 권리, 돈을 빌릴 권리, 동일한 일에 동등한 임금을 받을 권리, 그리고 돈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해 결혼할 수 있도록 스스로 돈을 벌 권리를 얻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았다. 페미니즘은 지금도 돈의 문제다. (10)
  •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31)
  • '제2의 성'이 있듯 '제2의 경제'가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맡아 온 일들은 의미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시각이 경제학적 세계관을 정의한다. 여성의 일은 '그 외의 일'이다. 남성이 하지 않는 일,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남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일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을 찾은 데 불과하다. 그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이다. (32)
  • 만일 경제학이 자기 이익의 추구를 연구하는 과학이라면 여성은 여기에 어떻게 적용될까? "남성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역할, 여성은 손상되기 쉬운 사랑을 지키는 역할이 주어졌다"가 정답이다. 그리고 이 역할 때문에 여성은 소외되었다. (52)
  • 애덤 스미스가 저녁 식사에 들어간 노동을 가치 없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를 위해 스테이크를 요리해야만 한다. (66)
  • 남성의 목숨은 귀중하다. 여성의 목숨은 남성의 목숨과 관련된 경우에만 귀중하다. 의료 혜택과 식량은 남성에게 먼저 주어진 후 여성의 몫이 된다. 이 때문에 북아프리카, 중국, 남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여성 사망률이 상승한다. 남아는 가족의 경제적 가치를 높인다. 기술의 발전으로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아내는 것이 가능해졌고, 남아시아, 중국,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지에서 여아를 낙태하는 일이 벌어진다. (78)
  •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메릴린 웨어링Marilyn Waring은 짐바브웨의 로펠트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이 제공하는 무보수 노동을 예로 든다. 그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11킬로미터를 걸어서 양동이 하나에 물을 채운다. 집에 돌아오면 세 시간이 지나 있다. 물론 맨발이다. 땔감을 모으고, 설거지를 하고, 점심을 차리고, 또 설거지를 한 다음 채소를 수확하러 나간다. 또 물을 길으러 길을 나선다. 돌아와서 저녁을 짓고 동생들을 재우면 밤 9시가 된다. 경제학적 모델에 따르면 그녀는 일을 하지 않는 비생산적 · 비경제적 존재다. (93)
  • 캐나다의 국가 통계청에서 무보수 노동의 가치를 계산한 결과, GDP의 30.6~41.4%를 차지하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30.6%라는 수치는 무보수 노동을 보수 노동으로 대체하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인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41.4%는 가사노동자가 집안일 대신 다른 노동을 했을 때 얼마나 벌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95)
  • 여성들은 노동 시장에 진입했지만 남성은 그에 상응하는 정도로 집안일에 진입하지 않았다. 일과 가정 사이의 경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대신 이것저것 누덕누덕 기워서 쓰고 있을 뿐이다. (102)
  • 경제학은 자기들만의 우주 안에 적용되는 논리와 게임을 추구하는 학문이 됐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인간으로, 그리고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유일한 경제적 의식을 구현하는 개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합리적이었다. (140)
  • 모든 사회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제는 물론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 위에 올라오는가?"는 경제학의 근본 질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그 답이 자기 이익 추구라고 했지만, 저녁마다 식사를 식탁에 차리고, 그가 열이 날 때 옆에서 돌봐준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179)
  •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게 하려 평생을 싸웠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돈이나 선의 중 한 가지 요인만이 동기가 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다. 게다가 이 개념은 성별에 관해 우리가 가진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성은 자기 이익 추구라는 본능에 의해 나아가고 여성은 전체적인 그림을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본능이 성별에 관계없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실 그것이 진실에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185)
  • 애덤 스미스는 사랑을 병에 담아 보존하고 싶어 했다. 경제학자들은 그 병에 라벨을 붙이고 '여성'이라고 썼다. 내용물은 다른 것과 절대 섞이면 안 되었고, 자물쇠가 달린 장에 잘 보관되어야만 했다. 이 '또 다른 경제'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간주됐다. 사실 이건 경제도 아닌, 전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마르지 않는 천연자원이었다. (188)
  • 현대의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은유를 빌려 내세운 개념을 가장 극단적으로 채용한 학파라고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 자신은 이러한 정치 형태-어쩌면 정치의 부재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를 옹호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을 이런 식으로 해석한 사람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치를 없애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들은 '정치가 시장을 섬기기'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합리적 행동을 장려해 경제를 이끌고 지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경제학 이론은 정치가 경제에 손을 못 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치가 손을 바쁘게 놀리도록 하는 상태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214)
  •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자본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노동과 자본 사이의 갈등을 간단히 해결한다. 즉, 인간의 삶을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투자 행위로 보는 것이다. (220)
  • 우리가 경제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공식적인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즉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왜 존재하며, 우리가 왜 일을 하는지를 밝히는 이야기 말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경제적 인간이다. 그리고 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가 여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269)
  • 우리의 관계는 경쟁으로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 자연을 적대적인 상대로 간주할 필요도 없다. 모든 부분을 합친 것보다 전체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은 기계 혹은 정교한 기계적 움직임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경제적 인간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286)
  •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진실 중 하나다. 여기에 한 가지 꼭 덧붙여야 한다. 바로 "공짜 돌보기는 없다"는 말이다. 사회에서 우리 모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의 보육 정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거의 항상 여성이다. (292)
  • 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왜 나오는지 이해하려면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경제학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애덤 스미스의 저녁이 어떻게 식탁에 올라왔는지, 그것이 경제학적으로 왜 중요한지를 따져야 한다. (298)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Who Cooked Adam Smith's Dinner?, 2012/카트리네 마르살Katrine Marçal/김희정 역/부키 20170203 328쪽 15,000원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에 대한 현대적 정의를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라고 했다. 《국부론》에서 단 한 번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은 후대 경제학자들이 유행시키며 현대에 와서 경제학의 기초가 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저녁 식탁에 스테이크가 오른 것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돌봤지만,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논할 때 애덤 스미스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31)"이다. 마거릿 더글러스Margaret Dougls는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이다. 마거릿 더글러스는 경제학에서 빠진 절반의 조각이다. "페미니즘 없이는 경제적 인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고, 경제적 인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서는 중요한 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291)"며 일침을 가한다.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가 아들을 돌봤던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이지 않는 성(性)"이 있음을 알려준다. 여성은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은 절반의 답을 찾았다며 경제학을 뒤집어 설명한다. 차별을 합리화하고 여성을 무시하는 경제학과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에 대해 유쾌하게 반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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