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즘의 목표는 권력을 남성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권력에서 폭력을 제거하고 권력의 의미를 바꾸는 데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 페미니스트는 답이 없는 두 선택지에서 억지로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지를 늘리거나 질문 자체를 바꾸는 사람이다. (5) 모든 운동과 이념이 특권을 성찰하지 않는 순간 억압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22) 수치심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게 해주고, 정의감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해준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내기 어렵다. (34) 왜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생기는 걸 두려워할까. 우리 사회에서 '피해의식'은 '남 탓을 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건 과대망상이나 남 탓하기라는 문제 행동을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이다. 이런 덧씌우기는 피해자가 '건강한' 피해의식을 가지는 걸 방해한다. 피해의식 victim mentality 의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첫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 원인이 아니다. 둘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을 막을 의무가 없다. 셋째, 피해자는 권리를 침해받은 자로서 공감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피해의식을 이해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없어져야 할 것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다. (61) 페미니즘보다 휴머니즘을 지향한다거나, 여성 인권이 아니라 보다 전체적인 인권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식의 말들이 휴머니즘과 인권을 가장 탈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과 휴머니즘이 다르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가령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을 재발명하고 있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꾸자는 급진적이고도 근본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운동이야말로 인간의 조건과 개념 자체를 질문하고 재구성하는 가장 혁명적인 휴머...